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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신학

규범, 그 실천이 답이다

기독교 세계관의 적용을 위한 세 가지 제안 2: 규범

by 김경호2023-03-31

기독교 세계관 운동 2.0 위하여

서울기독교세계관연구원(SIEW)과 함께 기독교 세계관 운동의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섭니다.  

오늘은 기독교 세계관의 적용을 위한 두 번째 제안인 규범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변혁을 위한 수단의 한 축으로서의 규범norms은 일차적으로 윤리적 관점에서 인간 행동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입니다. 이 규범은 기독교 윤리의 토대이자 불변의 근거로서 성경에 근거하며, 또한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의 마음의 법과 창조 질서에 근거합니다. 따라서 규범은 특별계시로서의 성경과 일반계시로서의 인간과 창조세계에 근거하여 세계관에 대한 판단 기준이 됩니다.       


규범의 일반적 원리: 성경 


규범의 일반적 원리는 성경에서 시작합니다.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는 계시와 성경의 관계에서, 결론적으로 계시는 인류에게 완전한 소유가 될 수 있도록, 성경의 형태를 취하였고, 성경의 형태로만 존재한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바빙크는 성경이 형태적인 관점에서 축자적, 유기적 영감설로 기록되었다고 말합니다. 성경이 기록될 때 기록자의 인간적이고 자연적 삶이 배제되지 않고, 하나님의 생각을 표현하는 데 쓰임을 받습니다. 성경은 그 내용에 있어서 그리스도에 관해 증거하고 있고,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재료와 내용으로 삼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은 구원에 대한 것일 뿐만 아니라 가정과 사회, 학문과 예술을 위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알버트 월터스Albert Wolters는 성경이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있어서, 기독교 세계관이 성경에 비추어 점검되고 수정되어야 하며, 또한 성경의 권위는 거룩한 종교적 영역(신학, 개인 도덕성)에 국한되지 않고, 정치, 예술, 학문과 같은 일에도 관여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결국, 성경은 기독교 세계관 형성의 일차적 규범입니다. 


규범의 구체적 원리: 인간의 마음과 창조질서 


인간의 마음의 규범. 로마서 2:14-15에 따르면 규범의 내용은 본성과 양심이라는 마음의 도덕법을 통해 나타납니다. 이상원은 인간의 마음의 도덕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인간의 마음속에 도덕법이 계시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으로부터 규범을 도출해내는 것이 가능하고, 이방인들도 어느 정도의 도덕적 삶을 영위하는 것이 가능하며, 일반윤리학 곧 철학적 윤리학이 성립될 수 있다.” 그러나 타락 이후에 인간의 마음의 도덕법은 완전하지 않고, 단지 시민적 의를 도모할 만큼만 남아 있습니다. 마음의 도덕법이 죄로 인하여 손상됨에 따라 새롭고 완전한 도덕법 체계인 특별계시가 주어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 기록된 도덕법이다. 성경의 도덕법과 마음의 도덕법은 서로를 대체하거나 부정하지 않습니다. 성경의 도덕법은 일반적 도덕 원리moral principles로서 작용하고, 마음의 도덕법은 구체적인 도덕 기술moral skills로 기능합니다. 이상원은 성경의 도덕법과 마음의 도덕법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잘 설명합니다. “따라서 기독교 윤리학이란 성경에 기록된 도덕법을 일차적이고 주된 규범으로 삼고, 이 주된 규범의 빛 안에서 마음의 도덕법과 지성의 활동을 통하여 얻은 구체적인 도덕적 지침들을 이차적이고 부차적인 규범들로 비판적으로 채용하는 가운데 인간의 행동의 옳고 그름에 대하여 반성하는 작업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때 일차적 규범과 부차적 규범이 서로 충돌과 갈등을 일으킨다면 일차적 규범이 적용의 우선권을 갖게 된다.” 


창조질서의 규범. 또한 규범의 내용은 월터스가 말하는 창조의 법 또는 창조질서에도 나타납니다. 그러나 창조 질서는 타락으로 인해 손상되어 있기 때문에 성경의 빛 안에서 비로소 규범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신칼빈주의 전통은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를 법이라고 규정합니다. 법이란 하나님의 우주적 명령 행위 전체를 의미합니다. 이 법은 다시 두 가지로 구분됩니다. 그것은 ‘자연법칙’과 ‘규범’입니다. 하나님의 법 곧 통치는 비인간적 영역에서는 자연법칙을 통해 직접적으로, 인간적인 문화와 사회의 영역에서는 규범을 통해 간접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창조질서에 속한 모든 것은 규범적 의미를 지닙니다. 또한 각각의 영역은 창조질서에 나타나는 규범에 순종해야 합니다. 전통적으로는 이것을 창조의 규범성, 또는 일반계시라고 합니다. 


규범의 적용: 경제 영역   


네덜란드에서 특별히 경제 영역에 대한 규범에 대해 고민이 많았습니다. 산업혁명이라는 큰 파도 속에서 경제 영역에 대한 규범을 오랜 시간 숙고하며 고민했습니다. 그 결과로 나온 것이 정의, 청지기, 책임, 연대라는 규범입니다. 


정의. 밥 하웃즈바르트Bob Goudzwaard는 성경으로부터 정의justice에 대해 고려해야 할 세 가지 기준을 제시합니다. 첫째, 성경에서는 정의를 결코 이중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정의는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사람들, 즉 왕, 판사, 재산 소유자들에게 말할 수 있는 하나의 요청입니다. 왕은 하나님으로부터 권세를 받았고, 판사는 정의를 선언해야 하고, 재산의 소유자는 가난한 사람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의무를 받았기 때문에, 이들은 각자 책임을 전제로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정의의 수혜자가 되어야 하는 사람들은, 과부들, 고아들, 땅이 없는 레위인들, 채무자들, 노동자들과 같은, 불의에 처하게 되는 약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국가의 사회와 시민법을 공유하며, 정의는 이러한 사람들을 명확하게 지향합니다. 둘째, 정의는 항상 해방 동인liberation motive을 포함합니다. 정의는 돈이나 권력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억압받고 행복한 삶의 전망을 잃어버린 자들에 대한 포괄적인 의미에서의 삶의 회복을 가져오는 동인이어야 합니다. 정의는 바리새인들의 의(구제)를 초월합니다. 즉, 정의는 억압받는 사람들과 궁핍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을 ‘구제’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삶을 건설하는 도움에도 관련되어야 합니다. 포로들은 자유를 누릴 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으로서 다시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정의는 인간 또는 국가가 자신의 소명을 다시 시작하고 독립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정당한 위치로 회복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셋째, 정의는 소유에 대한 특정한 형태를 반대하거나 찬성하는 선택이 아니라 소유가 다른 사람들에게 열려 있거나 닫혀 있는 이용 가능한 재산인지의 여부와 관련됩니다. 예를 들어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모든 농부에게 자신의 땅의 수확물을 가난한 자들을 위해 남겨 둘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법질서에서 소유는 배타적인 권리가 아니며, 소유는 이웃에 대한 모든 정당한 주장에 종속됩니다. 


청지기. 청지기직은 본래 경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6:2, 4에 나오는 오이코노미아oikonomia는 부당한 청지기의 비유에서 잘 알려진 단어입니다. 이것은 현대의 경제/경제학economic/economics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단어가 가정 관리인의 책임이라는 맥락에서 사용되고 있고, 또한 노모스nomos와 어원적으로 관련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즉, 가족이 보존될 수 있도록 지켜야 하는 규범이 오이코노미아입니다. 오이코노미아라는 단어는 아리스토텔레스를 통해서도 그 본래의 의미가 잘 설명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오이코노미아-기술의 취득’과 ‘크레마티스티케chrematistike-돈의 축적’을 구별합니다. 오이코노미아란 자신에게 맡겨진 재산을 잘 관리하여 열매를 맺고 그 과실을 생산 과정에 참여한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그들의 생계를 보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크레마티스티케는 자기 풍요의 추구, 나아가서는 필요시 타인을 희생시켜 가면서까지 더 큰 금전적 소득을 얻으려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경제는 크레마티스티케와 동의어가 되었고, 청지기직을 의미하는 오이코노미아는 점차 약화해 갑니다.


책임. 하웃즈바르트는 소명의 원리를 가지고 책임의 문제를 설명합니다. 소명의 원리는 루터와 칼뱅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특별히 칼뱅이 이 원리를 제도적 차원(가정, 교회, 국가 등)으로 확대함으로써, 오늘날 신칼빈주의 진영에 영감을 불어넣어 영역주권 사상을 형성시켰습니다. 이 소명의 원리에는 두 가지의 통찰력이 있습니다. 첫째, 이 원리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보편적인 것이므로 거룩의 정도에 있어서 신자들 간에 차별이 없습니다. 이 통찰력은 한 영역이 다른 영역에 종속되지 못하도록 합니다. 둘째, 이 원리는 삶의 각 영역 내에서 인간의 의지보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보다 더 우월합니다. 이 두 가지 원리들이 영역주권의 진정한 규범적 특징들입니다. 영역주권에서 주권은 특정한 영역이나 인간의 의지의 자율성을 가리키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이 주권으로 하나님과 동료에게 봉사하도록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소명은 가족 및 학교 내 아이들을 돌보는 사랑의 방식으로; 결혼 생활에서 남편과 아내의 진실한 사랑의 방법으로; 경제적 봉사의 유용성과 청지기 직분으로; 노조의 경우 근로자를 정당하고 공정하게 대우하는 방식으로; 공적 정의를 국가 전체의 특정 규범으로 사회 전체에 가져오는 방식으로 봉사하게 하셨습니다. 


연대. 하웃즈바르트는 책임의 나눔으로서 연대성을 다룹니다. 이 연대성은 공동의 책임을 전제하기 때문에 ‘사회 규범’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연대성으로서의 사회 규범은 참여와 협력으로 구체화합니다. ‘참여’는 국민이나 국가가 자신의 목적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직접적으로 관여함을 의미합니다. 이 규범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각 사람을 창조함에 기인합니다. 따라서 참여는 직접적인 공동 책임을 포함합니다. “협력은 서로를 생각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 이상을 포함한다. 협력하지 않으면 함께 사는 모든 형태가 결국 붕괴할 것이다. 협력은 공동으로 부담할 수 있는 책임들에 답함으로써 인간 사회 형성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협력은 인간의 책임의 보완이다.” 이상원은 연대의 개념에 대해 보다 포괄적인 관점을 제시합니다. 연대성은 인간의 행위 전체를 위한 규범입니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행 17:26)라는 말씀이 연대성의 출발점이 됩니다. 연대성은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수직적 차원과 이웃 사랑이라는 수평적 차원으로 상호 연결됩니다. 또한 이상원은 이웃에 대한 책임은 유기체로서의 사회 개념을 통해 더욱 강화되고 지지된다고 강조합니다. 이 연대성-유기체 개념은 사회 안에 소외 계층도 우리가 도와야 할 책임이 있음을 알려줍니다. 정리하자면, 중요한 것은 역시 실천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힘들게 만든 규범들이 도구화되고 간접적인 규범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윤리와 규범은 뒷마무리하는 정도의 유효성만 지닐 뿐입니다. 그렇다면, 정의, 청지기, 책임, 그리고 연대라는 모든 규범의 동시적 실천만이 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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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경호

김경호 목사는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M.Div.) 논문 “세 가지 유형의 개혁주의 세계관 연구”로 박사 학위(Ph.D.)를 받았다. 연구단체 Worldview & Work를 설립하여 연구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20년부터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국내외에서 세계관 교육을 하고 있다.